[사사기의 발견을 마치고] 인천송현센터 24년 봄학기 종강 나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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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커브 작성일24-06-23 02:35 조회3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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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송현센터 24년 봄학기 “사사기의 발견"을 마치며
각 모임에 따라 일반 간증문, 혹은
"사사에게 쓰는 편지" 등 은혜로운 종강 모임시간을 가졌습니다.
여기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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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 내 속에 네가 있음을 알게 해줘서 고마워
주일학교 시절 어린아이들에게 유명세를 떨쳤던 삼손.
“삼손은 나실인이래.”
“삼손은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였데.”
“삼손은 머리를 자르면 힘이 없어진데.”
“삼손이 기둥을 무너뜨려 3000명을 죽였데.”
그 삼손을 45세가 되어 다시 만났다.
커피브레이크에서 다시 삼손의 이야기들을 읽어내려가며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온갖 좋지 않은 단어들을 갖다대며 삼손을 한심해했다. 이해하기도 싫었다.
성경을 다시 읽고, 커피브레이크의 문제들을 풀어가면서도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그렇게 난 화가 잔뜩 난채로 나눔의 자리에 오게되었다.
그리고 나눔을 하면서도 난 나의 의견들을 이야기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성경 속 인물들 중 비난할수 있는 좋은 꺼리라도 찾은듯…
그렇게 우리의 나눔시간이 두 시간 정도 흐르고, 삼손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하려할 때
나도 모르게
"삼손이 너무 싫어요. 왜 이렇게 싫을까요? 진짜 너무 싫은데요…
그게 너무 나 같아요~~~!!!!!"
라는 고백을 하게됐고, 갑자기 눈물이 왈칵~~~!!!
삼손이 그렇게 싫었던 이유가 내안에 삼손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주님. 제가 삼손같네요.”
나실인으로 구별되어지고 그렇게 교육받아 성장한 삼손이
나실인의 삶에 대한 인식도 없이 마음대로 살았던 모습.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는 초인적인 힘을 썼던 삼손이지만 그때뿐이고,
쓰임받고 있음에 자만하며 일상을 살아가면서는 쉽게 죄를 지었던 삼손.
그 속에 담긴 내 모습들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음을 깨닫게 하셨다.
목회자가정에서 자라 목회자의 자녀로 살아오면서 전혀 구별되게 살아가지 않고
그런것에 대해 죄의식도 없었던 시절들.
사모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의 일들을 감당하지만 그런 경험들에 취해
쉽게 주님을 잊어버리고, 죄속에 거했던 내 모습들.
지금도 이글을 쓰며 나는 눈물이 줄줄 흐른다.
“주님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그 삼손이 저였습니다.”
그럼에도 쓰임받은 지도자가 아니라 그럼에도 쓰시는 하나님이셨음을.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삼손 안녕. 난 2024년을 살고 있는 여자삼손이야.
일단 너무 미워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진짜 좀 너무하긴했어. 나실인이었잖아.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사자를 찢어 죽일 때도 꿀을 떠먹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좀 기억하지 그랬어.
쓸데없는 수수께끼 내면서 힘자랑할 때도 적당히 좀 하지.
그랬으면 드릴라가 너 그렇게 꼬실 때 분별할 수 있었을텐데.
그랬으면 좀 더 멋진 모습으로 블레셋 사람들 다 죽였을수 있었을텐데.
끝까지 멋지게말야. ㅜㅜㅜㅜ
그런데 삼손,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이 모든 말들이 말야 결국 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야.
삼손 네가 그렇게 살았는데도 너를 사용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
그러나 네가 그렇게 살았는데도 멋지게 끝이 났다면 난 또 그 마지막 결론을 믿고 아직도 미처 깨닫지 못 했을 수도 있어.
삼손, 내 속에 네가 있음을 알게 해줘서 고마워.
앞으로라도 그랬으면 좋았을텐데라는 후회보다
하루하루 더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도록, 주님께 인정된 일꾼으로 살기 위해 노력할께.
-노은미(화요오전대면 1조)-
지금이 21세기 사사시대
죄를 짓고 부르짖으면 사사를 세워주시고 또 다시 죄를 짓고....
사사기를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었나? 늘 의문이었습니다.
커피브레이크로 들여다 본 사사기는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고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화가 났습니다.
특히나 레위 사람의 말도 안되는 행동을 보며 남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결국 남편이 저에게 남긴 결론은 "지금이 21세기 사사시대야. 지금 정신 똑바로 차리고 깨어있지 않으면 사사기보다 더 악한 시대를 지나게 될거야!"
문득 내 아이들은 어떤 시대를 살게 될까 걱정되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시대.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가? 라는 질문 앞에 스스로 작아지는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답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 기도는 '누가 먼저 베냐민과 싸울까요?' 묻는 이스라엘 백성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일하심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답은 내가 정해놨으니 하나님은 지니의 램프처럼 응답만 해주시면 된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들이 생각한 옳음은 무엇이었을까요? 나의 옳음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내 생각과 옳음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과 옳음을 구하는 제가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생각해보면 이스라엘과 우리에게는 항상 하나님이라는 가장 큰 왕이 계셨습니다.
이제는 그 분의 통치 아래 온전히 사는 저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김희진(화요오후비대면 1조)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된 시간
사사기는 끊임없이 신실하고 긍휼하신 하나님과 반대로
끊임없이 죄를 짓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대조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말씀으로 마칩니다.
그로 인해, 사사기 곳곳에서 이스라엘이 부끄러운 모습들이 발견됩니다.
그들 가나안의 악한 문화를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악한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의 이런 악한 모습은 지금의 우리의 모습 속에서,
더 나아가 나의 모습 속에서도 깊이 베여 있고 많이 닮았음을 느낍니다.
특히,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을 진정 믿지 못하여
개인의 행복과 생각이 우상이 되어가는 시대를 보면서 더욱 실감을 하게 됩니다.
사사기를 마무리하며, 나는 예수님을 진정 나의 왕으로 모시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말씀 앞에 내 모습을 비추어보는 일이 힘들고 어렵지만,
‘커브’를 통하여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고,
나의 고집과 아집을 내려놓고 더욱 말씀을 붙드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김지연 (화요오후비대면 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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