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 처음과 마지막-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며 발견하게 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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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ffee Break 작성일23-12-21 00:43 조회1,35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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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마지막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며 발견하게 된 ‘소망’
송화정/ Virtual Center
창세기의 발견3을 마치는 2023년 12월은 그 어느 때보다 은혜로운 한 해였다고 고백하고 싶다.
Coffee Break를 통해 성경의 처음과 마지막인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말씀을 2023년에 Virtual Center 금요일 오전반 소그룹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분이 주신 소명을 감당하며 구별된 삶을 살아가시는 본을 보이시는 분들이기에 매주 그분들의 믿음과 삶을 나누는 시간을 고대하곤 한다.
창세기 1:26,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를 묵상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달았던 그 감동과 창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말씀으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주체를 깨닫게 해 주셨던 그 은혜를 만끽하며 ‘창세기의 발견3’을 시작했다.
창세기 25장을 통해 아브라함의 죽음과 그 복을 이삭에게 주셨고, 이삭의 아들들인 에서와 야곱을 구별하고 계심을 묵상하였다. 산 제물이 될 뻔했던 이삭, 그것을 오롯이 느끼면서도 아버지를 묵묵히 따랐던 청년 이삭은 결혼 후 이방 왕에게서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창26:28)는 증언을 들었다. 하지만 노년 이삭은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보다 자신이 즐기는 별미를 가져오는 사냥꾼 아들 에서를 더 사랑하여서 믿음의 가정이 어떻게 균열되어지는 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야곱은 그 장자권에 집착하고, 엄마인 리브가는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 솔선수범하여 속임수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왜?!
형들에 의해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결국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된 요셉, 죄와는 거리가 먼 그는 형제들의 배신뿐아니라 누명으로 긴 시간 감옥살이를 해야 만했다. 그러나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으니’(창50:20),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창50:25)라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삶으로 전하였다. 어떻게?!
창세기의 발견3에서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 그 언약의 자손들인 이삭과 야곱과 유다와 그 형제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나약함과 속임수와 시기 질투 살인까지도 서슴하지 않는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며 그 어느때보다 왜? 어떻게? 감정적인 질문들로 묵상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타락하고 나약한 믿음의 자손들의 삶을 감정적으로 묵상하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소망’이 자라나고 있었다. 이삭보다 이기적이고, 야곱보다 간사하며, 요셉의 형제들보다 악한 죄 덩어리인 ‘나’ 이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하신 아브라함과의 영원한 언약을 이루실 것을 ’창세기의 발견3’ 묵상하며 믿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택하신 믿음의 백성들 모두가 요셉처럼 살아냈다면, 감히 내가 ‘소망’을 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죄와 씨름하며 선을 악으로 갚는 언약 백성들을 끝끝내 인내하시고 악을 선으로 역사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했기에 죄인인 내가 감히 ‘소망’을 품어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소망을 품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라는 나의 막연한 질문을 이미 알고 계신 듯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를 묵상하게 하심으로 삶의 푯대를 세워주셨다. <7월 컨퍼런스 요한계시록 간증문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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