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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백불 - 백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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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ffee Break 작성일22-12-22 23:32 조회1,3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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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백불
백은실 / 글로발 커피브레이크 대표

 ‘커피 브레이크 하다가 바디 브레이크 되겠다.’ 친정에 가서도 여러 행사들을 준비하느라 밤늦게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아버지께서 늦은 밤에 방문을 열어보시며 걱정을 담은 눈빛으로 무심코 하신 말씀에 피곤을 잊고 소리 내어 웃었던 행복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가슴에 간직되어 있다. 5년 전에 하늘나라에 입성하신 아버지가 나이가 들고, 해가 갈수록 더욱 그리워진다.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맑고 솔직하셨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시며,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섬기는 삶을 흔들림 없이 사셨던 순수하고 청렴한 목사님이셨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아버지께서 개척교회를 시작하며 우리 가정의 이민생활이 시작되었다. 남들은 우리 가정을 보고 돈만 없지 모든 게 다 있다고 격려했지만, 가난은 우리의 삶을 무척 불편하게 했다. 이민 초기에 수입이 없어서 한국에서 가져왔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한 달에 이백 불 정도로 살아가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백 불을 가지고 슈퍼마켓에 갔었다. 우리들은 당장 급한 학용품이 필요했고, 어머니는 다섯 식구가 몇 주를 먹고 살아야 하는 식재료들을 사러 가는 시간이라 온 가족이 들떠있었다. 슈퍼마켓 앞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내려서 마켓으로 향하던 우리의 발걸음을 아버지가 멈추셨다. ‘잠깐만 얘들아, 내가 파킹을 하면서 옆에 차를 조금 긁은 것 같아.’ 우리는 놀라서 옆에 차를 잘 살펴보았지만 부딪힌 표시도 없이 멀쩡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금 스친 게 분명하다고 그 차의 주인이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고 하셨다. 
기다리던 그 시간이 왜 그리도 길게 느껴졌던지 그냥 가도 될 텐데 싶은 마음에 모두 얼굴이 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차 주인이 나와서 상황을 듣더니 차를 살펴보고 나서 별 표시도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차 주인에게 연필로 그은 연한 자국 같은 표시를 집어서 보여주시며 아버지가 낸 사고가 맞다고 거듭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그냥 가라고 하던 차 주인이 자세히 보니 보인다고 백 불을 달라고 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그날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슬픈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42년이 지난 오늘도 그날이 잊히지 않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투명하게 살아야 함을 알려주신 아버지의 가르침의 무게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개척을 시작하고 처음 몇 년을 주중에 막노동을 하셨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씀하시며 밤마다 우리들을 앉혀놓고 땅콩과 건포도 같은 먹거리들을 펼쳐놓고, 우리의 하루가 어떠했는 지 물으시고, 아버지께서 노동하시며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시곤 하셨다. 
남가주는 날씨가 더워서 수영장이 있는 집들이 많아서 아버지가 수영장 청소를 하기도 하셨는데 어느 날 아버지를 신뢰하고 좋아했던 큰 저택을 가지신 집 주인이 두 달 치 수고비 백 불을 선불로 주시고 여행을 가셨단다. 아버지는 수영장 청소를 마치고 나서 차고에서 물이 좀 새어나오는 것 같아 봐 드리려고 차고에 들어갔다가 틀어보신 꼭지가 고장 나면서 순식간에 차고가 물바다가 되는 사고가 일어났단다. 손바닥 만한 작은 통으로 6시간 동안 물을 퍼내시고, 꼭지도 고치시고, 차고가 깨끗해질 때까지 치워드리고 왔다면서 주인이 오면 기뻐하실 거라고 얘기를 하시는데 우리는 퉁퉁 부은 아버지의 손을 보면서 목이 메어 아무리 삼키려해도 땅콩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던 그 밤의  가족모임도 잊을 수가 없는 시간이다. 
아버지를 신뢰하고 백 불을 먼저 주고 간 주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던 아버지는 작은 교회였지만 하나님이 맡기신 성도 한분 한분도 성심을 다하여 돌보시고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으로 사신 목사님이셨다.

결혼한 이후 우리 집은 많은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이 방문하시고 묶고 가시는 은혜를 누렸다. 그중에 한 선교사님은 세상에서 가장 열악한 곳에서 선교를 하시는 분이셨다. 그분이 계시는 동안 우리 부부는 그분의 선교 간증을 들으며 밤을 새우기도했다. 마지막 날 그분이 짐을 챙기시면서 목사님 한 분을 찾고 있고 어디 사시는 지 꼭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많은 분들이 선교비를 보내주었지만 얼마 지나면 멈추곤 했는데, 그 목사님은 어김없이 매달 백 불씩 꼬박꼬박 선교사님 계좌로 변함없이 보내주시는 분이라고 하셨다. 우리 부부가 사역을 하고 아는 목사님들이 좀 많으니 알아봐 드리겠다고 목사님 성함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그분이 찾고 있는 분은 바로 아버지셨다. 우리 아버지라고 했더니 선교사님이 얼마나 놀라시는지 이런 복된 만남이 있을 수 있냐고 무척 기뻐하셨다. 그분의 감동스러운 인사를 들으며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 형편에 백 불을 매달 보내 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을 알기에 그 돈을 보내기 위해 아버지가 포기해야 하셨을 것들이 떠올랐다. 부 목사님과 전도사님 사례 먼저 드리고, 십일조 내시고 나면 아파트 렌트비 사백여불 겨우 낼 수 있을 만큼 사례비를 가지고 오셨을 텐데 어떻게 선교사님께 백 불씩을 보내셨을까? 어머니도 아셨을까? 많은 질문들로 심란해지며 가슴에 눈물이 고여왔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선교사님께 보내셨던 아버지의 백불은 머리로는 계산이 되지 않는 믿음의 오병이어였음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난하게 키워서 미안하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땅의 어떤 부자보다 더 부자같이 사셨던 분이다. 


올해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아버지의 삶이 많이 생각나며 스스로에게 질문들을 던져 보게 된다.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 나는 얼마나 투명하게 나의 죄를 고하며 진실하게 살아가는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에 그 크고 작음을 떠나서 얼마나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하는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나는 어떤 오병이어를 드리고 있는가
아버지의 백불은 억만금의 가치로, 나의 삶에 위대한 유산으로 남겨졌다.


골로새서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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